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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원방송
[2부]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회! [살전1:2-10]
설교자정은주목사 2018-10-07 조회수83 500k mp3 word 요약
1:2
우리가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은

1:3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1:4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1:5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1:6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1:7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1:8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1:9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1:10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가 됩시다.’
[서론] 한 처녀가 운전하던 차와 한 총각이 운전하던 차가 충돌했습니다. 차는 완전히 망가져 버렸지만, 신기하게도 두 사람은 한 군데도 다치지 않고 멀쩡했습니다. 차에서 나온 처녀가 총각에게 말했습니다. “차는 이렇게 되어버렸는데 사람은 멀쩡하니 이건 우리 두 사람이 맺어지라는 하나님의 계시가 분명해요.” 총각은 듣고 보니 그런 것 같아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처녀는 차로 돌아가더니 뒷좌석에서 양주 한 병을 들고 와서 다시 말했습니다. “이것 좀 보세요. 이 양주병도 깨지지 않았어요. 이건 우리 인연을 축복해 주는 게 분명해요. 우리 이걸 똑같이 나눠 마시며 우리 인연을 기념해요.” 그래서 총각이 병을 받아서 반을 마시고 처녀에게 건넸습니다. 그러자 처녀는 뚜껑을 닫더니 총각 옆에 술병을 놓아두는 것이었습니다. 총각이 처녀에게 웃으며 “당신은 안 마셔요?”라고 물어보았습니다. 처녀가 방긋이 웃으며 말했습니다. “이제 경찰이 오기를 기다려야죠.”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웃기지만 슬픈 이야기인데, 요즘 교회를 보면서 세상 사람들이 교회를 믿을 수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기는커녕 그 맛을 잃고 길거리에 버려져 짓밟히는 현실입니다. 교회에 대한 실망이 하나님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더 큰 문제가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상황 속에서 우리 교회는 오늘 제목처럼 ‘세상을 감동시키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특별히 오늘은 예원교회가 창립 31주년을 맞아 창립감사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제가 ‘예원교회를 개척할 때 가졌던 중심은 오직 선교’였습니다. 예원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세상을 감동시키겠다는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저는 창립 31주년을 맞은 올해 제2의 개척이라는 가슴을 가지고 목회를 하고 있습니다. 작년 12월 완공된 본당과 렘넌트문화센터를 영적 베이스캠프로 해서 이제는 ‘전 세계 237개국 살리는 선두 교회로서의 역할을 감당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살펴볼 말씀은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 세워진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말씀입니다. 사도행전 17장에 보면 데살로니가 교회는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에서 3주간 전도캠프를 진행하고 난 후 야손의 집을 중심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증거했을 때 경건한 헬라인의 큰 무리와 적지 않은 귀부인들이 복음을 받아들이자 유대 지도자들이 이것을 시기하여 바울팀을 죽이려고 했습니다. 사태가 매우 급하게 되자 데살로니가 성도들은 바울과 실라를 인근 도시인 베뢰아로 보냈습니다. 이렇게 급하게 떠났기 때문에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서 자기를 대신하여 성도들을 양육하도록 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베뢰아를 거쳐 아덴, 고린도에 이르러 복음을 증거하고 있었고, 데살로니가로 파송했던 디모데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소식을 가지고 고린도에 도착했습니다. 이들이 핍박 속에서도 믿음에 굳건히 서 있고, 세상에 감동을 주는 교회로 성장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소식을 들은 바울이 기쁨에 넘쳐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을 칭찬하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메시지가 오늘 본문에 기록되어 있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예원교회가 창립 31주년을 맞아 세상에 감동을 주는 교회, 복음의 선한 영향력을 입히는 교회로 서 가는데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이 한 사람도 빠짐없이 모두 견고하게 쓰임 받는 믿음의 성장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믿는 자의 본이 되는 교회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살전1:7) 사도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이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다고 강조하면서 이렇게 믿는 자의 본이 될 수 있었던 이유를 3절에서 6절 말씀에 밝히고 있습니다.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의 인내를 우리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끊임없이 기억함이니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떤 사람이 된 것은 너희가 아는 바와 같으니라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살전1:3-6) 데살로니가 교회에 복음을 증거할 때 사도 바울은 말로만 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가운데 복음을 증거했고, 성령의 역사와 감동이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에게 임했던 것’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의 가장 큰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 그것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살전2:13에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가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함은 너희가 우리에게 들은 바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사람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음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이 말씀이 또한 너희 믿는 자 가운데에서 역사하느니라”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삶을 사는 데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말씀을 받는 자세’입니다. 사람의 말로 받는다는 것은 자기 기준을 가지고 강단의 말씀을 판단하고 재단한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렇게 되면 변화가 없습니다. ‘강단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는 것은 내 기준, 내 생각, 내 고정관념, 선입견, 편견을 다 내려놓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말씀이 선포되는 대로 각인, 뿌리, 체질화되게 되어 있고, 자연스럽게 삶의 변화로 이어집니다. C.V.D.I.P.에서 C인 Covenant(언약)이 제대로 각인될 때 새로운 시작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제가 오늘 있을 예원 산업인대회 주제 특강을 통해 이 부분에 대해서 사실적으로 세밀히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산업인, 중직자, 평신도, 렘넌트가 나의 C.V.D.I.P.를 실제로 붙잡고 있어야 합니다.

데살로니가 교회 성도들은 받은 말씀을 자신의 삶 속에 적용해서 특히 세 가지 측면에서 믿는 자의 본이 되었습니다. 그것은 3절에 나오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입니다. 우선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은 역사가 뒤따릅니다. 여기서 역사는 History가 아니라 Work(행위)입니다. 믿음을 통해 나타난 결과를 강조하는 것입니다. ‘역사’라는 말을 쉽게 행위라는 말로 번역합니다. ‘믿음에는 행위가 자연스럽게 따르기 때문에 믿음은 추상적이거나 막연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로 주어지는 것이지만 믿음의 역사를 체험하는 것은 행동이 뒤따라야 합니다. 그래서 C.V.D.I.P.의 마지막 Practice(실행)가 중요합니다. 예수님 제자 야고보는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두 번째로 사랑의 수고입니다. 사랑에는 수고가 뒤따르게 되어 있습니다. 이 수고는 한 번 하고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수고를 의미하는 헬라어 ‘코포스’는 ‘계속해서 경주하는 노력’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살전5:14에도 보면 사도 바울이 이렇게 권면합니다.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게으른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격려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으라” 마음이 약하고 힘이 없는 자들이라는 것은 믿음이 연약한 자를 말합니다. 이런 한 영혼이 복음 안에서 올바로 서가기 위해서 이들을 향한 수고가 반드시 지속하여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새가족부가 중요하고, 지교회 사역이 중요합니다. 새가족부의 지속적인 사랑의 수고가 있어야 한 영혼이 교회에 정착하게 됩니다. 또 4천지교회 운동은 두 가지 영적 방향이 잡혀 있습니다. ‘하나는 소속된 기관의 영적 성장이며 또 하나는 영적 지경을 넓혀가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가야 합니다. 영적 성장이 있을 때 현장을 가고자 하는 움직임이 일어나게 되고, 그것이 현장의 변화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사랑의 수고가 있는 사역이 지역과 각 기관 부서에서 활성화되기 바랍니다.

세 번째로 소망의 인내입니다. 여기서 소망은 예수님의 재림에 대한 소망을 가리킵니다. 주의 날을 기다리는 소망이 이들에게 있었기 때문에 이들은 환난과 어려움 속에서 인내할 수 있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 소망을 두는 사람은 결코 삶 속에서 좌절하거나 실망하지 않습니다. 인내라는 말은 수동적이고 조용히 참는 것이 아니며 깡으로 버티는 것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인내는 군인들이 강하고 담대한 마음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훈련과 전투를 견디어내듯이 현실 속에서 만나는 어려움을 담대히 이겨내는 태도’를 말합니다. 이렇게 소망의 인내가 있는 삶을 살 때 인생작품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놀이동산에 가면 회전목마가 있습니다. 형형색색의 인공 말들이 달려있습니다. 그런데 이 말들은 아래위로 움직이지만 앞으로 나가지 못하고, 계속 그 자리에서 맴돕니다. 신앙생활도 이렇게 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자기감정에 따라 오르락내리락은 하는데 전진을 하지 못하는 회전목마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이런 ‘회전목마 신앙이 아니라 결승점을 향해 힘차게 질주하는 경주마 인생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원교회 모든 성도는 믿음의 역사, 사랑의 수고, 소망의 인내가 흘러넘쳐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2. 믿음의 소문이 나는 교회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
(살전1:8)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진 것에 대해 바울은 너무 감격해서 아무 할 말이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어떻게 이런 믿음의 소문이 날 수 있었는지를 구체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우리에 대하여 스스로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너희 가운데에 들어갔는지와 너희가 어떻게 우상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살아 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기는지와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그의 아들이 하늘로부터 강림하실 것을 너희가 어떻게 기다리는지를 말하니 이는 장래의 노하심에서 우리를 건지시는 예수시니라(살전1:9-10) 이 말씀 속에 크게 3가지 단어를 붙잡아야 합니다. ‘돌아서라, 섬기라, 기다리라’ 이 세 가지는 ‘복음으로 새롭게 각인, 뿌리, 체질화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일단 하나님과 영적 소통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옛 습관, 옛 체질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12가지 영적 문제 속에서 확실히 빠져나온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살아계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섬긴다는 말은 노예가 일하는 모습을 의미합니다. 과거에는 죄의 종이 되어 사단 종노릇하던 삶을 살았지만,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얼마나 감사하고 놀라운지 날마다 더 깊이 체험하면서 한 알의 밀알이 되어 섬기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나를 통해 생명이 살아나는 역사를 맛보며 재림하실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고 기다리는 삶입니다. 우리는 지금 언약의 여정을 가고 있습니다. 이 과정에서 각종 문제와 사건이 일어날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의 계획을 보는 눈이 열리게 되고 하나님의 응답의 시간표가 보입니다. 그리고 ‘영의 눈이 열리면 마귀의 허풍을 두려워하지 않고, 마귀의 거짓에 선동되지 않습니다.’ 결과적으로 하나님의 목표, 세계복음화의 주역으로 쓰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인도 선교사였던 고든 맥스웰 선교사가 하루는 힌두교 수도승을 찾아가서 인도어를 가르쳐달라고 했습니다. 이 수도승은 미국 유학을 했기 때문에 영어를 할 수 있어서 인도말을 쉽게 배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수도승이 거부하면서 당신이 나를 전도하려고 그러는 거 아니냐고 했습니다. 이 선교사가 말하기를 “전도하려는 게 아니라 그저 언어만 가르쳐주시오.”라고 했습니다. 그랬더니 이 수도승이 하는 말이 걸작이었습니다. “지금까지 당신하고 지낸 사람 치고 그리스도인이 안 된 사람이 있소?”라고 했다고 합니다. 얼마나 멋진 삶입니까? 예원교회 모든 성도 여러분은 삶 속에서 이런 믿음의 소문이 흘러넘치는 증거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결론] 어느 교회 목사님이 설교 중에 교인 열 명을 불러서 소방차에 필요한 역할을 하나씩 맡겼습니다. 한 사람은 운전하고, 또 다른 사람은 사이렌 통제, 또 한 사람은 물 호스를 맡았고, 다음 사람은 소방차 뒤에 달린 핸들을 맡았습니다. 이 목사님은 그들에게 각자의 역할을 흉내를 내게 한 뒤에 각 사람에게 물었습니다. “자 이제 당신의 목적은 무엇입니까?” 각 사람이 자신이 맡은 역할을 설명했습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 이 목사님이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다 틀렸습니다! 여러분의 목적은 딱 한 가지 바로 불을 끄는 겁니다.” 이처럼 교회 안의 성도들의 역할은 각기 다 다를지라도 전체적인 사명은 똑같습니다. 그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더 효과적으로 증거하고, 이 세상 끝까지 복음을 전한다는 천명을 위해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천명의식, 사명의식, 소명의식을 분명히 붙잡을 때 그 공동체는 원니스를 이루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는 데 일심, 전심, 지속으로 올인하고 집중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예수님이 수없이 돌아가신다 해도 그 소식을 듣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여러분 주변에 아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부활의 복음을 듣지 못해 영원한 멸망길로 가고 있는 자가 있다면 그들을 살려내라는 것이 하나님께서 창립 31주년을 맞은 우리에게 주시는 메시지입니다. 여러분이 가진 ‘유일성의 복음을 실제로 전하며, 세상을 복음으로 완전히 감동시켜 나가는 우리교회’ 성도님들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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